작성일 : 09-12-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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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복음 II - 두드려 들어가는 나라(2009-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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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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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일 깊은 물소리 예배 설교자:허령
공관 복음서에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는 주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 아니며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는 것으로 우리 안에, 곧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왕국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처음부터 예수님을 왕으로 소개하며 "kingdom"이라는 단어가 50번 이상 사용되고 있다. 또한 주님은 당신의 메시지를 '천국 복음'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본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지는 산상보훈 가운데 주님은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며 그것은 바로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임을 지난 번 말씀에서 나누었다. 또한 주님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으라(seek)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구하라(Ask)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Seek)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Knock)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1)구하고 (2)찾고 (3)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나눈 말씀은 구하는 것과 찾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는 기도로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며, 둘째는 실질적인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모든 동기와 목적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그 길을 찾는 것이다. 오늘은 그 세번째 문을 두드리는 것, 곧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에 대해 나누려는 것이다.
마태복음서에서는 주님이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간다/들어가지 못한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어떤 행동이나 어떠함에 의해 천국 문이 열려 들어가게도 되고 천국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함께 보며 천국 문을 두드려 열리게 하는 순종의 일들이 어떤 것임을 보도록 하겠다.
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4:17)
이것은 예수님의 첫 메시지이다. 회개해야 하는 것은 먼저는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천국을 소유하며 살기 위해 있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합법적인 세상의 왕, 사단의 왕국에 속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회개하고 주님을 믿을 때, 사단의 왕국에서 벗어나 구원 얻게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이 땅의 삶을 끝낼 때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도 주님이 왕으로 오심으로 이 땅에 임한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후보자가 된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회개하고 그분을 믿기만 하면 당연히 있게 될 죽은 후에 누릴 영생보다 살아서 이 땅 위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강조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인정하기 힘든 현실은 이미 주님의 나라가 임한 이 땅 위에는 여전히 어두움의 왕국, 사단의 왕국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권세가 꺽이고 패배 당한 나라이지만 마지막 그 날까지 그 나라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의 왕국은 세상 왕국이며 또한 나의 왕국이기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을 얻은 뒤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면 여전히 사단이 다스리고 있는 세상의 왕국, 나의 왕국, 어두움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캐나다 시민권자이면서도 공산권 나라에서 압박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듯이.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심각성을 말해 준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천국 시민이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의 왕국 가운데 살며 그 나라의 왕의 영향을 받고 그렇기에 이 땅에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이 나라를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천국이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다시 들어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고 있지 않은 것을 회개하는 회개란 바로 천국 문을 두드리는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는 그 문이 열린다는 약속이 있는 것이다.
2.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3, 10)
이 두 구절은 팔복의 처음과 끝의 복에 대한 말씀이다. 가난한 심령을 갖으며 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이 천국을 들어가 소유하고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함이란 무엇일까? 가난하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일까? 실상 우리 모두의 영은 하나님이 채우시지 않으시면 가난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바로 주님이 채우셔야하는 필요를 깨닫는 자인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이 '더욱' 필요한 자라는 것을 아는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라고 하겠다.
이런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바로 천국 문을 두드리는 것이고 그렇기에 천국은 이런 사람의 되는 것이다. 혹, 내 안에 가난한 심령이 없지 않은가? 이만하면 충분하다, 또는 적당히 믿는 것이 좋다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먼저는 내 안에 가난한 심령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천국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란 무엇일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곧 아무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란 오직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의이며 그 주님의 의는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올바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의는 자연스럽게 의로운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란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키며 세우기 위해 치르는 모든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대가인가 하면, 북미와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취미생활, 오락을 포기하는 대가 일 수도 있다. 이렇게 주님과 올바를 관계를 통한 의를 지키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며 주님과 올바른 갖기 대가를 치르며 핍박을 받는 것이 바로 천국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천국을 소유할 것을 약속하신다.
3.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 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19, 20)
복음서에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온다. 바리새인의 언어적인 뜻은 '구별된 자'이다. 신구약 중간 시기에 시작된 학구적인 평신도의 움직임으로 부패하고 나태한 제사장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가고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많은 규례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지키며 생긴 율법적인 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원래적인 의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결(purity)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의라고 말씀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곧, 오늘날의 믿는 자들 역시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열성과 헌신된 태도로 배우고 행하며 가르치는 것은 천국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럴 때에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크다 여김을 받겠다고 말씀하신다.
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니라" (7:21)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는 좋아한다. 모두 그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상 그 뜻을 알려주시면 그것을 행하기는 그리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종종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알게 해주셔도 그 뜻과 내 뜻과 비교하여, 내 뜻이 낫다고 결정하거나 또는 적당히 절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란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다시 기억할 때, 그분의 뜻, 그분이 원하시는 일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5. "..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18:3,4)
주님은 가르치실 때에 천국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셔도 제자들은 그리 천국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이 구절은 제자들이 천국에 대해 말한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나마 그들의 질문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천국이 무엇일까, 어떻게 들어가는가가 아닌 '누가 더 큰가'이다. 곧, 비교하고 경쟁하는 마음이며 남보다 더 크고자 하는 마음이다.
주님의 답은 그들이 그대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다시 한번,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비교하고 남보다 크고자 하는 생각에 가득차 있다면 이 땅 가운데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며 주님이 뜻이 이루어지는 그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신다. 비교하고 경쟁하며 스스로 큰 자가 되려는 것을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회개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주님께서 불러 세우신 한 어린아이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누가 큰 자이며, 겨루어 높아지려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운데 서라고 부르시니 그저 나와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돌이켜 이 아이같이 변화되는 것이 바로 천국 문을 두드려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시할 것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천국에는 크고 작은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실상 '큰 자'가 있다고 하신다. 자기를 낮추는 자, 겸손한 자, 곧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움직이는 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큰 자'라고 하신다.
6. 하늘에 보화를 쌓음
중요하면서도 좀 어려운 부분이므로 좀 더 시간을 더 할애하여 보도록 하자. 마태복음 19:20-30까지의 그 유명한 부자 청년 이야기이다. 주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eternal life)을 얻으리이까?" (v. 16)라고 묻는다. 구원을 얻는 길을 묻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v. 17)라고 말씀하신다. 청년은 "어떤 계명이로니이까?"(v.18)라고 물으며 구체적인 답을 구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v.18)고 말씀해 주신다. 청년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키었사오나..."라고 말한다.
잠깐 멈추어 질문해 보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말하는 것이다. 곧, 이 청년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 청년이 이미 구원을 얻을만한 자인 것, 이런 이미 계명을 지키는 자인 것을 아신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것만이 아닌 것을 느끼며 부족함 가운데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닐까.
같은 기사를 기록한 마가복음 10:21은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라고 말하며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신다. 문제는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부자였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간다.
그 뒷 모습을 보시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23, 24)
흥미로운 사실은 청년은 구원에 대해 말했는데 주님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이 부자 청년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아니다. 구원은 받았다 하더라도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몹시 힘들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자는 하나님보다 돈을 왕으로 삼기가 쉽다는 말이기도하다.
깜짝 놀란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5)라고 묻는다. 주님은 천국을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청년과 같이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26)라고 답하신다. 하나님이라면 부자도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부자도 그분의 통치 가운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도 부자들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였고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김 여인들(눅 8:3) 가운데는 넉넉한 부자들이 있었다. 구약의 많은 중요 인물들은 대부분 부자였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부자란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부자가 되기 원한다. 그것을 큰 복으로 생각한다. 물론 부를 누리는 것은 분명 복이다. 그러나 그 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복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부하려 하는 자'에 대해 경고하신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7:9,10
부자가 되려 애쓰는 자들은 시험, 올무,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멸망하게 된다고 말해준다. 그 올무, 그 해로운 정욕이란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이며, 돈을 사랑하는 것은 수많은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게 하는 맘몬에게 속임을 받고 많은 근심이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부자가 되려는 것은 사단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며 사단을 초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 부하려 하지 않고 부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재물을 하나님이 맡기시는 은사나 사역 같은 책임으로 여길 때에 가능한 것이다. 내 수중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철저히 아는 청지기로 살며 그 맡기신 재물의 목적을 아는 자는 결코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대신 돈을 섬기는 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보화를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땅 에서 모아 놓은 것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겠다. 언제든 얼마든 주님이 주라 하시는 대로 주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재물을 풀어 흘러가게 하시는 일을 계속하실 수 있는 것이다. 곧, 돈을 주인으로, 왕으로 섬기는 자가 아니라 노예로 다룰 줄 아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는니라"(6:20) 부하기를 힘쓰는 자가 아니라 내게 맡기신 보화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며 줌으로 천국에 쌓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천국에 있게 된다. 바로 천국을 두드려 그것을 소유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천국은 이렇게 두드리는 자가 들어가는 것이다. 천국은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내 안에 이런 삶이 없었다면 오늘 회개 할 때에 그 가까이 있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개인의 삶, 가정과 교회, 일터와 사회와 땅으로 번져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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