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2-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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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복음 V: 천국의 제자: 허령 (200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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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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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4일 깊은 물소리 예배 설교자: 허령
여러 번 반복되는 말이지만 복음서(특히 마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다. 오늘은 왕국복음의 마지막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제자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제자에 대해서는 우리 안에 이미 여러 가지 이해가 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의 제자를 천국의 제자, 또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교사)라고 부르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
마태복음 13:11에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어 있다하신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제자란 하나님에 나라에 대한 비밀을 배우고 그 나라를 가르치는 자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전하라 부탁하신 메시지 역시 천국, 하나님의 나라였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마 10:9)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눅 9:2) (칠십인) "...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하라" (눅 10:9)
이렇게 볼 때에 제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대해 배우고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곧, '천국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서의 제자의 대한 기록을 보며 '천국의 제자'가 1) 치러야 할 대가와, 2) 약속되어 있는 상급과 3) 임무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 원하다.
I. 제자의 자격(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음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까" (마 19:27) (눅 18:28)
제자는 '주님을 좇는 자'로 그들이 주님을 좇기 위해서 했던 일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음을 베드로가 말하고 있다. 제자들이 버린 모든 것이란 그들의 직업과 가족이었다. (시몬과 안드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20) (요한과 야고보)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22)
또한 형제, 자매, 부모, 자식, 전토 (마 19:29)이며, 집과 아내 (눅 18:29) 이다. 그들이 버렸다고 하는 가족과 소유물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며, 책임을 가져햐 하는 것들이고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더 이상 가족들과 상관하지 않으며 전토나 집을 또는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일까? 제자란 세상과는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며 가족도 소유도 없이 사는 사람들만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만일 이렇게 버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버리는 것이라면 이상한 일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베드로는 여전히 주님을 모셔드릴 여전히 집이 있었고 주님이 고쳐주신 장모가 있었다. 후의 기록을 보면 사역을 하며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예수님도 끝까지 어머니를 돌보시고 십자가에서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그의 어머니로 모실 것을 부탁하셨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이전의 직업인 어부의 일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들이 주님 없이 스스로 하다가 실패한 것을 도와주실 뿐 그들이 일하는 것을 꾸짖지는 않으셨다. 사도 바울은 장막을 깁는 직업을 지닌 채 사역하였다.
한글 성경의 '버린다'라는 말은 영어로는 'left'라는 말로 두고 떠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쓰레기를 버리듯 없애버린다는 것 아니다. 똑 같은 표현이 잃은 양의 비유에 나옴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 15:4)
두고 떠나는 99마리는 중요하지 않아서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은 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 99마리의 한 마리 한 마리는 잃은 양 한 마리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99마리를 '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두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99마를 들판에 버려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제자인 우리가 주님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게 중요했던 모든 것을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분께 맡겨드리며(주님의 손에 두고) 주님을 따르는 길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을 따르기로 나서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한 것들이기에 오히려 주님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손에 버렸을 때, 주님이 이것들을 어떻게 하시는 지는 뒤에서 볼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버린 것은 소중한 것만은 아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레위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비방)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세리였던 레위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그가 버린 것은 세리라는 직업과 그 직업으로 얻은 재물만이 아님을 볼 수 있다. 제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하며 레위가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에는 당연히 레위의 친구인 세리들이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잡수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방한다. 이에 예수님은 당신께서 병든 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말하자면 레위는 병든 자이며 죄인이었다. 병든 자와 죄인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회개하고 주님을 좇을 때 제자가 되는 것이다.
레위가 버린 모든 것이란 그의 과거와 그의 죄와 그의 병(마음의 병)이다. 레위와 다른 제자들과의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옛 삶에서 '일어나야' 했다.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8절) 그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기의 죄와 병으로부터 '일어나'야 했다. 또한 그가 들어왔던 비방과 조롱, 수치, 분노, 그러면서도 버릴 수 없던 욕심으로부터 일어나야 했으며, 가난한 동족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했던 죄로부터도 일어나야 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는 제자의 부르심이 어떤 '사역'에 대한 부르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죄인임을, 병자임을 깨닫는 자들이 돌이켜 주님을 좇으며 더 많은 죄인과 병자들을 주님께 데려오는 사람이 바로 제자인 것이다. 바로 레위가 자기 집에서 많은 세리들을 초대하여 잔치한 것같이.
오늘 주님이 우리를 '천국의 제자'로 새롭게 부르신다. "모든 것을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희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권이기도 하다. 내게 소중한 가족의 관계와 소유를 주님께 맡기며, 곧 주님의 손에 남겨 두고 주님을 좇는 것이다. 주님의 손은 실상 나의 손보다 훨씬 믿을 만한 곳이면 안전한 곳이다. 주님을 좇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온 가족을 이끌고(주님의 손에 맡긴 채) 오지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나의 과거와 죄와 병을 버리고 일어나는 것이다. 나의 과거와 죄와 병에 갇혀 있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들을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좇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일은 매일 매일의 삶, 순간순간의 삶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일이다. 가족과 집과 소유물을 그분께 맡겨드리고 그분의 손에 버릴 때 주님은 대부분의 것들을 다시 우리에게 돌보게 하시며 그 돌보는 것을 통해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것들이 주님의 소유인 것을 인정하며 시시로 다가오는 문제와 염려거리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주님께 맡겨드림으로 그분을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제자의 삶이며, 그 삶의 비결을 전하는 것이 제자의 삶인 것이다.
또한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작정한 우리들은 여전히 죄를 범하며 슬픔과 분노의 마음의 병이 들기도 한다. 그 때마다 돌이켜 회개하고 일어나 주님을 따르기로 하는 것, 또 다시 발견한 나의 죄와 실패와 연약함을 주님께 버리고 다시 새롭게 '일어나' 주님을 좇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분명해 진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 가운데 둘러싸이게 된다. 그런데 제자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사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를 군사로 모집하신 그분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하시고 돌보시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그분께 맡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그분의 군사인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4
II. 제자의 얻는 것/상급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베드로는 그렇게 포기한 삶에 대한 상급이 궁금했다. 다시 한 번 베드로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우리 대신 질문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까" (마 19:27) (눅 18:28)
주님은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신다. 먼저는 보좌에 앉아 그분의 승리를 함께 나누며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이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8) 세상의 왕들은 자기를 추종하는 자를 종종 이용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좇는 제자들로 그분의 승리를 함께 나누며 그와 함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 보좌가 어떤 것이며 주님과 함께 심판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그 마지막 날에야 알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분명 너무나 놀랍고 큰 상급일 것임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버린 것을 여러 배 받는다는 것이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29) 또한 여러 배를 받는 것은 죽은 후에 천국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삶, 금세에 받는 것임을 말씀해 주신다.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눅 18:30)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배로 되받는 것이다. 주님께 드렸더니 이렇게 많이 더 받았다는 간증이 아니라도, 여러 배의 형제나 자매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누리는 모든 관계 가운데 있으며, 여러 배의 부모나 자식 또한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있는 영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들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 배의 집과 전토란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서로 나누는 소유이며, 자기의 것을 자기의 소유로 주장하지 않고 자기의 집을 열어 서로 환영하며 자기의 재물로 서로를 섬기는 모습으로 누려지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연약하여 이 땅에서 여러 배로 누릴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에게 가능한 관계이며 소유인 것을 우리는 알며, 또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다.
III. 제자의 임무: 하나님의 백성을 먹이는 일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한 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람들을 먹이는 일이었다. 실상 주님의 사역 가운데 그들은 대부분 그저 주님과 함께 있으며 주님의 일은 지켜보는 자였다. 그러나 오천 명을 먹이시고 사천 명을 먹이실 때 제자들은 활발히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떡과 생선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은 날이 저무는 것을 보며 주님께 무리를 보내셔서 먹을 것을 사 먹도록 하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 막 6, 눅 9)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무리 가운데 있던 적은 음식을 취하시고 축복하신 후에 나누어 주셔서 무리에게 주게 하신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이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들이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 되어 하고 있어야 할 일이란 주인이 맡긴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5,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회복하시며 세 번이나 주신 명령 역시 "내 양을 먹이라/ 치라" (요 21:15-7)였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오늘 날의 제자들이 하고 있어야 할 일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임을 믿는다. 제자란 주님의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인 것이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의 큰 사역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특별히 사회보장이 잘 된 나라의 신자들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여기며 소홀히 하기 쉬운 일이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가 언제나 있을 것이라 하셨고, 그분의 공생애 가운데 언제나 가난한 자에게 주셨던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나누어 주라하신 양식은 물질적인 양식만을 말하는 것 아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 천국의 말씀을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는 자가 된 천국 제자가 자기의 곳간에서 가져 나오는 '새 것과 옛 것'의 양식이란 육의 양식이 아닌 영혼의 양식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옛 것'이 이전부터 있던 성경의 진리의 말씀이라면 '새 것'이란 매일 주님께 나아갈 때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계시의 말씀일 것이다.
천국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란 이렇게 천국의 말씀을 배운 자로서 그 천국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증인의 삶이며 복음을 전파하는 삶이다. 복음이란 구세주가 왕으로 오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다스리신다는 것, 그분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 복음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었고 신약을 통해 이루어져 기록되어 있는 옛것이지만, 매일 매일 새롭게 깨우치시고 가르치시는 새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천국 제자로서 부지런히 배우고 매일 매일 왕이신 주님 앞에서 그 나라에 대해 배우여 그 나라의 원칙으로 살며 또한 곳간에 넉넉히 있게 하시는 많은 계시의 말씀으로 필요한 자들에게 새 것과 옛 것을 내어다 주는 삶이 바로 제자된 우리의 삶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지으신 모든 사람들의 육신과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다.
왕국복음에 대한 다섯 차례의 말씀을 마치며 마태복음 6:33의 말씀을 다시 기억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다는 것은 이 세상과 다른 삶, 다른 life style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 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얻고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왕이신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주실 뿐 아니라 이 모든 것들 - 천국 제자로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덤으로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삶인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시는 말씀의 배경에는 '염려하지 말 것'(마 6:24-34, 눅 12:22-34)에 대한 말씀이 있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들은 문제 앞에서 염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천국의 말씀을 배우며 천국의 비밀을 아는 제자들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자 결론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같이 염려하는 자로 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왕이심을 선포할 때에 그 모든 상황에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미 나의 마음 가운데 임하신 그분의 나라, 그분이 왕으로 다스리고 계신 그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는 내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 제자가 항상 기억할 말씀이다 - 모든 상황과 기회 가운데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자가 되는 것! 그 때에 우리는 매일 매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을 수 있으며, 이 땅위의 삶에서 여러 배로 주시는 것을 감사히 누리며, 때를 따라 내 삶에 붙이신 사람들에게 육신과 영의 양식을 내어 주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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