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2010년 1월 4일 깊은 물소리 설교말씀
설교자: 허령
고후 1:13,14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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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교훈이 "그대 서강의 자랑이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였다. 그 당시에는 서양의 신부님들이 세우신 독특한 학교이기에 교훈도 좀 독특한 것으로만 여겼었다. 나중에야 그 말씀이 바로 성경에서 나오는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이 말씀을 다시 보며 그 대학을 세운 예수회와 낯선 나라에 와서 교육에 몸을 바친 신부님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존경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은 긴 서신을 두 번에 걸쳐 기록하는 가운데 그와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어떤 것이기를 바라는 소원을 말하고 있다. 그의 일행이 고린도 교회를 자랑하고 (be proud of/자랑스럽게 여기고) 또한 고린도 교회가 그를 자랑하는, 곧 서로가 자랑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뿐 아니라 고린도 후서에는 '자랑'이라는 말이 24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에 거듭되어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 하셔서 거듭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는 이렇게 서로를 자랑하는 관계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관계라는 이해를 얻으며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서로를 자랑하는 관계를 누리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나눈다. 물론 지혜 없이 세상의 것을 자랑하기에 생기는 문제들이 빈번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으로 우리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자랑하며 어떻게 자랑하는 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랑하시기에 서로를 자랑한다.
어리석게 자랑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여겨 자랑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바울이 자랑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에게 결코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린도는 그 당시 그리스의 상업과 문화와 종교의 중심 도시로서 우상숭배와 아울러 종교를 빙자한 성적 부도덕이 팽배한 곳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 있는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분열의 문제가 있었고, 거짓 교사들이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정직성과 사도로서의 영적권위를 도전하는 것에 흔들림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성령의 은사가 많이 나타났지만 미성숙하고 성서적이지 못한 사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1년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가르치며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장막을 지으며 자기와 일행의 비용을 충당한 기사가 있다. 마치 어린 자녀를 키우기 위해 수고하는 어버이같이 바울이 개인적으로 많은 수고를 치르고 세운 교회이지만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골칫거리 였으며,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녀같은 존재였다. 바울은 오히려 한숨지으며 그들을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취는 찾아볼 수 없이 이 구절 외에도 바울은 여러 번 고린도교회를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에게 비결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심지어 그분은 사단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라며 욥을 자랑하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욥은 자랑하실 만한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자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그 역시 완전한 자는 아니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이유는 먼저는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곱다는 말이 있다.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는 여전히 자랑스럽고 고운 존재인 것이다. 육신의 부모들도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하는 부족하고 작은 일들을 보며 그들을 완전한 존재처럼 자랑한다. 몇 발자국 떼는 아기를 보며 너무나 잘 걷는다고 자랑하고, 방긋 웃는 것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녀같이 자랑하다. 줄 몇 개와 동그라미 몇 개 뿐인 별 볼 것이 없는 그림도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는 남에게 자랑한다. 그러면서 기저귀를 더럽히며, 식탁을 어지럽히고, 혼자 하겠다고 그릇을 깨뜨리는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어린 자녀일 뿐이다. 나는 종종 하나님께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다. 특별히 실패하고 낙심될 때에 그런 질문을 한다. 하나님께서 항상 들려주시는 말씀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씀이다. 종종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도 나의 모습은 그저 부끄럽고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였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여기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시기에 그분 앞에서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임을 다시 확인해 주시는 그 말씀을 다시 들을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며 그 말씀을 믿는다.
우리는 다른 부모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녀를 우리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는 훌륭한 부모, 완전한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그분의 자녀를 함부로 하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그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이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그의 자녀들을 우리 역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마땅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은 그저 맹목적으로 자녀를 감싸는 부모의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나의 모습과 상태를 아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이 나를 어떻게 키워 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완성된 모습을 이미 보시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존재이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내가 그분 앞에 있기만 하면 그 목적을 이루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있으시며, 그분이 만드신 되고자 하는 나에게 베푸실 모든 은혜가 있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그분은 내 안에 두신 모든 잠재력, 곧 내 안에 두신 당신의 보화를 보신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과 실패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지금의 우리를 마치 완성된 자와 같이 '이미'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랑하시는 것이다.
바울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연약하고 실패할 때도 있었고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알게 되었기에 고린도 교회에 대한 동일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심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쉽게 연약한 것, 잘못된 것, 실패와 실수에만 집중하며 비판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극히 인간적 견해에 그치는 모습이다. 물론 죄와 연약함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때에 따라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서로에 대한 "태도"는 아버지가 우리를 보시듯 자랑스럽게 여기며 서로를 자랑하는 자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서로를 온전히 알아갈 때에 자랑할 수 있다.
13절과 14절 전반의 내용,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은 한글 성경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13절 전반절의 내용은 바울이 쓰는 내용은 명백한 사실만을 쓰기에 감추어진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거짓 교사들의 중상에 대한 변호의 말이라고 보겠다. 그 뒤에 그들이 바울을 끝까지 알기를 바란다며 지금은 대강(부분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영어성경(NLT)을 보면 "I hope someday you will fully understand us, even if you don't understand us now. Then... "이라고 기록한다. 번역해 보자면, "너희가 지금은 우리를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지만,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게/알게 될 때에는 우리가 너희를 자랑하듯이 너희가 우리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먼저는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려고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온전히 알고 이해할 때에 일어나는 일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흔히 세상이 사람을 알며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세상은 사람의 가진 것, 업적, 겉모습을 보며 흔히 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알 때에는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를 시기하거나, 또는 우월감을 느끼며 무시하거나 또는 부끄러워하기 쉽다. 그러나 서로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비교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 한사람에게 무한한 가치를 두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할 때인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를 육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육신으로는 선한 것이 없다.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 줄 아노니..." (롬 7:18)
우리의 육신은 부족하고 여전히 죄를 범하며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며 한마디로 그리 아름답지 못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육신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회복하실 그 원래의 모습으로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서로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고 평가하였기에 그분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요셉의 아들이며 목수이며 갈릴리 사람이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에 십자가에 못 박아 없이 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은 육신(혈과 육)으로 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시해 주신 것임을 말씀하신다. 우리 역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알고자 할 때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먼저는 하나님이 알고 계신 나를 보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이 알고 계신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 자녀들,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볼 때에 서로를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딸과 아들이며, 그 사람만이 이루어드릴 하나님의 목적이 그 삶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서로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보며 자랑할 때 그 자랑대로 되어 질 것을 또한 확신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고린도교인들을 알고 있기에 그들을 자랑하였으며, 또한 자신을 그들에게 알리려 하는 것 역시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으로 보며 그들도 바울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3)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함으로 서로를 자랑할 수 있다.
고린도 교회를 자랑한다고 여러 번 말한 바울은 11장에서부터는 자신을 자랑하게 된다. 거짓 교사들의 중상에 대한 변호이기도하다.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하며 그가 고린도 교회를 위해 치른 수고와 고난을 말하고 있다. 11장을 읽어보면 그가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회를 위해 겪은 환난은 참으로 자랑할 만한 것임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론적으로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11:30)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은 것을 자랑할 것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약한 것을 자랑할 뿐이라는 것이다(12:5). 바울은 자신의 약함이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9) 그 가운데 특별히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7)를 들어 말한다. 흔히 바울의 육신의 병으로 이해하는 그의 문제이며 고난이고 고통이다.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2:8,9)
동정을 받거나 위로 받기 위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 광고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는 이 약함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약한 것에서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기에 자랑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안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임을 보게 된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24
그러므로 나의 연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서로 안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내게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감당케 하시며 또한 나의 연약함을 통하여 오히려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그분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에게는 약함이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제, 고난, 고통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가시, 사단의 사자일 수 있는 것이다. 약함을 자랑하되 죄는 자랑하는 약함이 결코 아니다. 죄는 고백하고 해결하여야 할 것이지 자랑할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연약함이란 우리에게 선한 목적을 두시고 허락하시는 우리의 삶의 고통과 문제이며, 우리가 지고 주님을 따라 가야 하는 십자가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약함에 대해 먼저는 선한 목적을 두시고 허락하시는 것임을 기억한다. 바울도 자신의 가시를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12:7) 주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불평하거나 자기연민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숨기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선한 뜻이 있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더욱) 자랑"할 때 우리는 서로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바로 그 하나님을 자랑함으로 서로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고후 10:17)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주 안'에 있기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나와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될 것을 아는 믿음으로 서로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자랑할 때에,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감사하게 되는 진정한 교제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렇게 서로를 자랑하는 관계로 살아가기 원하신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격려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작정하며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서로에 대해 마땅히 생각할 것을 생각하는 훈련인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생각할 마땅한 것이 무엇임을 말씀해 주신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내 주위의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 자녀들, 교인들, 지도자들, 내게 맡겨진 사람들안에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많은 잘못된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 한 가지, 경건한 것 한 가지, 옳은 것 한가지, 정결한 것 한 가지,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 한 가지를 찾아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 한 가지를 생각하며 그 안에 계신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서로를 자랑하며 살기 원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야 하는 훈련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훈련하며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인 서로를 자랑하자. 또한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그 사람으로 온전히 알아가며 서로를 자랑하자. 그리고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여 내 안의 주님을 자랑함으로 서로를 자랑하자. 하나님 아버지는 이 일을 기뻐하신다.